흡사 응원단의 힘찬 박수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 속에서,
산비탈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마주하며 매봉산길을 오른다.
사뿐이 즈려 밟기에는 너무 짓눌린 진달래 꽃잎의 아픔을 함께하며.
"김일성 수령 만세"를 연호하는 일사불란한 북한주민의 마스게임을 보는 것 같은 환각 속에
진달래의 합창을 함께 하며, 이제는 봄기운에 흠씬 물든 산길을 오른다.
햇살의 밝음과 땅기운의 축복을 느낄 즈음,
착암기의 굉음과 함께 도곡동 맨하탄(?)의 빌딩숲이 눈앞에 다가선다.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아직도 수줍은 10대의 문학소년의 마음이고,
술취한 내 얼굴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아직도 르꼬르뷔제의 굵은 안경테라도
소중히 더듬고 싶은 꿈많은 건축학도 이건만 ---.
두다리의 통증과 배둘레 허리부분의 거북스러움은, 내 자신을 년령의 포로가 되게 하여
무기력의 수렁 속으로 밀어 넣는 듯하다.
오늘도 익숙한 산길을 돌아 내려오며,
하늘 가득히 하얗게 눈앞을 밝혀주는 벚꽃의 축복을 한아름 껴안는다.
봄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애틋함이 결혼식 축포와도 같은 기쁨으로 바뀌고,
눈꽃 같은 벚꽃의 퍼레이드를 바라보며 그저 망연자실의 경지로 치닫고 싶게끔 한다.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을 귓속에 담고,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도 희망과 축복의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삶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 나자신을 추스르면서,
마음껏 스케치하고픈 욕망 속으로 무작정 내닫는다.
1998. 04. 07 (화) / 이 항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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